1. 플라톤이란 이름과 탄생의 비밀
플라톤은 아테네 명문가 출신이다. 부친은 왕족이고 모친은 유명한 귀족 집안이다. 서양철학에 정점을 이룬 철학자라 알려졌다. 청년 시절 소크라테스의 문하로 들어가 철학을 배웠다. 이후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아간 아테네에 환멸을 느껴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이집트를 돌아다니며 다채로운 사상을 접했다. 아테네로 귀국한 뒤, 교외에 '아카데미아'라는 학교를 세워 철학 연구와 교육에 전념했다. 아카데미아는 약 900년간 이어졌다. 지식이 없는 자는 들어오지 말지니'. 이 말은 아카데미아 입구에 새겨진 문장이라고 한다. 플라톤의 사상은 수학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플라톤’은 ‘넓은’이라는 뜻으로 ‘이마가 넓은’ 또는 ‘어깨가 떡 벌어진’ 사람을 뜻한다. 그를 가르치던 체육 선생이 플라톤의 떡 벌어진 어깨와 넓은 가슴을 보고 단박에 “어이, 플라톤!”이라고 불렀다는 일화가 있다. 한편 넓고 훤칠한 이마로 인해 또는 언변이 좋고 박학다식해서 이러한 별명이 생겼다는 설도 있다.
당대에는 실패한 철학으로만 여겼던 플라톤의 사상은 서양 철학사의 부름을 받았다. 인류의 여러 역사 속에서 탄생한 수많은 철학 중 플라톤이 선택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 팬데믹 위기의 시대인 오늘날, 전쟁과 전염병이라는 혼란 속에서 탄생한 플라톤의 철학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플라톤은 서양철학의 최고봉이다. 그 이후에 나온 서양의 모든 철학자는 '그저 그에 대해 각주를 단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플라톤이 활동하던 시기는 차분하게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태평성대는 아니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막 전쟁을 시작한 때였다.
전쟁이 터진 이듬해 설상가상 아테네에는 끔찍한 전염병이 돌았고 오래 지속되었다. 안팎으로 힘겨운 싸움을 하던 아테네는 결국 27년간의 긴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한편 전쟁에서 승리한 스파르타는 그리스 전체를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했다. 여러 도시국가가 스파르타에 도전하면서 갈등과 전쟁이 계속되었다. 민주정의 아테네는 스파르타가 심어 놓은 과두정의 괴뢰 정부가 들어서면서 극도의 정치적 혼란이 생겼다. 이런 혼란기에 플라톤은 어떤 철학적인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2. 소크라테스와의 만남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스승이다. 플라톤은 연극 대본처럼 등장인물이 철학적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글을 썼는데 약 35편의 대화편 대부분에서 소크라테스가 핵심 인물로 등장한다. 그만큼 소크라테스를 존경하며 사랑했고 그의 가르침을 평생 되새기면서 살아간 것이다.
플라톤은 죽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내 삶에 세 가지 행복이 있다. 첫째는 내가 짐승으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 둘째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고 그리스에서 태어났다는 것, 셋째는 다른 시대가 아닌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대에 태어나 그를 만났다는 것이다.”라고 했을 정도다. 그가 얼마나 소크라테스를 존경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두 사람의 첫 만남에 대한 설화이다. 플라톤은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그는 비극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작품을 썼다. 스무 살에 디오니소스 제전의 비극 경연 대회에 작품을 제출하려고 아고라를 지나는데 사람들이 누군가를 둘러싸고 잔뜩 모여 있는 걸 발견한다.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궁금해서 다가간 플라톤은 여러 사람과 철학적인 주제를 놓고 흥미로운 대화를 주도하던 그에게 완전히 사로잡혀 버린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다'라면서 들고 있던 자신의 비극 작품을 불 속에 던져 버리고 그 자리에서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비록 플라톤은 비극 작가로서의 꿈은 접었지만, 비극 작품 못지않게 아름다운 문학적 구성과 표현으로 소크라테스를 무대에 올렸다. 그의 문학적 재능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철학적 연극을 남겨 소크라테스를 불멸의 존재로 만든 것이다.
물론 플라톤은 작품 속에 소크라테스가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면에서 각색하기도 하고, 실제로 성사된 적 없는 가상의 대화도 만들어 냈다. 즉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철학을 그대로 드러내는 한편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스승을 무대의 앞에 내세우고 사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 셈이다. 그래서 많은 학자는 플라톤의 작품에 나오는 소크라테스는 역사적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플라톤의 대역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3. 이상 국가의 실현은 가능한가
플라톤의 대표작은 ‘국가’이다. 이 작품에서 플라톤은 ‘아름다운 나라’를 구상하고 있다. 민주정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철학자가 통치하는 철인정치를 주장한 것이다. 플라톤이 민주정에 비판적인 원인은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깊은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가 전통적으로 섬기는 신을 믿지 않으며 아테네의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내용으로 고발당해 법정에 섰고, 첫 번째 재판에서 유죄가, 두 번째 재판에서 사형이 결정되었다.
플라톤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우매한 민주정과 교활한 수사학이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죽였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판단할 능력도 없는 청중이 재판관이랍시고 앉아서 교묘한 수사학적 연설에 휘둘려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판결하는 재판 시스템과 민주정 자체를 혐오한 것이다.
게다가 민주정 때문에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진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그래서 ‘국가’에 나타난 이상적인 국가는 상당 부분 스파르타를 닮았다.
그는 국가가 너무 커지는 것을 경계했다. 적정 규모의 국가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국정 전반을 다스리고, 가장 용감한 사람들이 군인이 되어 나라를 든든하게 지켜주며, 의욕이 활활 넘치는 사람이 절제의 미덕으로 과욕을 부리지 않되 성실하게 일해 공동체 전체의 생산력을 높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각자가 자기 능력과 자질, 취향에 맞게 제 몫을 다하면 정의가 실현된다고 믿은 것이다. 그는 특히 소크라테스를 죽인 일그러진 아테네를 바로잡고 스파르타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국가를 이루고 싶어 했다.
플라톤에 따르면 세계는 몇 개의 세계들로 구분되는데 이데아의 세계는 참되고 본래의 세계이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물 세계는 존재와 무의 가운데 있는 모상(대상의 외부적인 형상을 그대로 본떠서 나타낸 것)이다. 그러면서도 플라톤은 단순히 구분에 그치지 않고 참되고 근본적인 존재인 이데아적인 존재를 통해서 다른 존재들이 존재를 갖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동물의 운동이 결국에는 그 피부가 아닌 뼈의 구조와 근육의 움직임에 의해서 결정되듯이 세상은 뼈와 근육과 같은 이데아의 세계를 살짝 덮은 가죽 같은 사물들의 세계로 덮여있어질 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은 천상에 머물며 이데아를 내려봤으나, 지상으로 내려오는 도중 그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플라톤이 이데아의 세계만이 참되고 본래의 세계라고 주장한 것은 일견 이상하게 들리지만, 수학을 근거로 생각해 보면 이것을 나름대로 이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기하학적인 법칙에 의해서 우리는 사물의 운동과 구조를 예측하고 조작할 수 있다. 굽은 나무 기둥들을 가지고 집을 지을 때도 이 기둥들이 '굽은' 것이 아니라 '직선'이라고 생각하고 직선의 형태만을 고려하여 집을 지으면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있다. 한편 세상에 완벽한 원형을 만들 수도 없고 그에 완벽하게 접하는 직선을 그릴 수도 없지만, 원의 이데아와 직선의 이데아를 생각하며 계산하여 우리는 접점의 위치를 언제나 매우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이데아들이 어떻게 실제적이고 참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가 바퀴를 만들고 기둥을 만들 때 그 둥근 바퀴와 곧은 기둥들의 사소한 일그러짐은 무시할 수 있다. 즉 가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이데아들은 변하지 않으며 항상 모든 사물에 적용할 수 있다. 그것이 곧 진리이다. 그러므로 수학과 논리학의 명제들은 절대로 보편타당하며 특히 플라톤에게는 다른 어떠한 현실보다 강하게 주어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4. 플라톤이 현대철학에 미친 영향
플라톤이 현대철학에 미친 영향은 아주 많지만, 그의 미학적 관점으로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철학적 관점으로 미의 문제를 정립하고 그 본질을 규명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아울러, 현대에 이르러 철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미에 대한 것들을 철학적 관점으로 정립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둘째, 플라톤의 철학적 이념에 관한 것들은 합리주의, 낭만주의, 관념주의 등과 같은 현대 철학 사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셋째, 플라톤의 철학적 관점에 의한 미의 탐구는 근대 미학의 변천사와 함께 미학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가능하게 했으며, 철학적 사유에 의한 미의 이해는 예술의 위상을 크게 높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창조성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각을 변화시켜 주었다.
넷째, 플라톤은 미학의 여러 가지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었다. 즉, 어떤 국면들이 대상을 아름답게 만드는가, 미적 기준이 존재하는가, 자연에 대한 예술작품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등을 비롯하여 예술철학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물음들에 대해 예술론과 철학을 통해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다섯째, 플라톤은 예술이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경고하였다. 이 점에서 오늘날 예술을 통한 청소년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예술은 누구에게나 향유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는 만큼 경우에 따라 유해 또는 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러한 이유에서 신이나 영웅들의 비도덕적 행동에 대한 이야기가 청소년들의 교육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현대 청소년 교육에서 수준 높은 인문학적 소양과 예술교육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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