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자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BC 384 ~ BC 322)는 그리스 북쪽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마케도니아의 왕, 아 뭔 다스 2세의 친구이자 주치의였고, 그의 어머니도 부유한 귀족 출신이었다고 한다. 17세의 나이로 아테네에 가서 플라톤이 운영하던 유명한 아카데메이아에 입학한다. 그는 아카데메이아에서 학생 겸 교수로서 20년 동안 머물면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사상에 관하여 공부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죽자 아카데메이아를 떠나서, 소아시아로 건너가 토로 아서 지방 앗 소스에 정착한다. 그 후 자연과학을 연구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필립 포스 2세의 아들의 스승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 세계를 정복하고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우던 시절을 경험했다. 그리스에 체류할 때 동·서양의 문물이 만나는 지리적 여건을 잘 이용하여 여러 학문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그러다 323년 원정에서 귀국하던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그리스의 혼란기가 시작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에 팽배해진 반(反)마케도니아 기운을 알아차린다. 이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가 아닌 예우 보이와 섬의 칼 키스로 떠나가 62세의 나이로 삶을 마친다.
2. 아리스토텔레스 정치사상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사상을 이어받기는 했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의 정치철학은 플라톤의 그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철학적 지혜’와 다른 실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실천적 지혜’를 제시하며 자기 생각을 전개한다. 하지만 그는 현실적 측면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과 함께 이상을 실현할 실천적 요소를 함께 고려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스승인 플라톤의 ‘국가’와는 다르게 이론만으로 책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현실 정치체제에의 여러 종류와 그 변형과 발생 과정과 전개 붕괴와 원인이나 보존 방법까지 자세하게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에 대한 이해에 주목했다. 기존의 플라톤 철학이 이성을 특별히 강조하는 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에서 설득의 3가지 요소와 같이 그는 이성만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감정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판단하는 아주 중요한 핵심 요소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감정이란 개인적인 차원의 감정이 아닌 사회적 측면에서 사회구성원들과의 상호작용에서 구성되는 감정을 이야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절대적인 진리에 집착하지 않거나 전문성이 없어도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조건들로 인해 정치학을 필연적인 법칙으로 보지 않고 일종의 우연 학문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상 국가의 극단적 통일성에 대해 비판한다. 그의 이런 관용적이고 유연한 사고는 시대에 앞선 사상이라고 여겨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와 도덕을 따로 분리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으로의 개인에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좋은 개인이 곧 좋은 시민, 좋은 통치자라고 여겼다. 좋은 사람이란 실천적 지혜인 ‘중용의 덕’을 지닌 사람을 의미한다. 결국 도덕적 성품이 좋은 지도자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통치자의 탁월함도, 개인의 탁월함도 모두 중용이라는 도덕적 성품에서 나오고 통치자는 과부족의 양극단을 경계하고 중용으로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통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정치와 도덕을 분리했던 근대 이후 정치사상가들의 생각들과는 다른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의 전제를 중용이라고 보았다. 그는 실현될 수 있는 최선의 정치체제는 중산계급에 결정권이 있는 정치체제라고 보았다. 따라서 중간계급을 양성하고 그들에게 정치적 권한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산계층이 강하면 극단적 민주정치 체제나 극단적 과두정치 체제가 참주 정치체제로 발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에 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는다. 특히 생산을 중요하게 여겼다. 정상적인 생산을 통하여 부를 축적하는 것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의 서술 중에 당시에 유행하던 고리대금업을 강도 높게 비판한 서술이 있다. 고리대금업은 노동이나 생산이 아닌 불로소득으로 여기고 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3.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술한 내용들은 후대 서양철학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한가지 방면에 특화한 사상 보다는 여러 방면에 두루 두각을 나타내며 일반적인 사상에 대하여 주장을 많이 했다. 그는 정치학이나 윤리학, 시학, 수사학, 논리학, 형이상학 등 인문·철학적인 학문체계를 성립함과 동시에 물리학, 생물학, 동물학 등 자연과학에도 영향을 미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의 저술들은 기원후 800년경부터 처음에 중동지역에서 그다음으로는 스페인에서 유럽의 여러 나라로 유입되었다. 당시 유럽 사상의 전반은 플라톤주의에 기반을 둔 기독교 사상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에 따라 처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연구가 금지되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사상 중에 주목할 것은 스콜라 철학이다. 도미니크 수도사들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를 거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신학과 혼합되어 스콜라 철학의 토대가 되었다. 당시 기독교 사상에 새로운 영향을 미칠 만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유럽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현시대에 와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서구 철학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라는 평가받는다. 아직도 그의 서적 정치학, 수사학, 시학, 형이상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논리학 등의 저술들은 흔히 ‘고전’이라 일컬어지며 현재도 가치 있게 읽히고 있다. 이에 마키아벨리나 홉스의 정치철학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이상적 사회를 탐구했던 헤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는다. 카를 마르크스에게도 사회주의 철학을 완성하는 데 있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영향을 많이 주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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