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조주의란?
현상의 의미를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와 관계하는 사회나 문화의 구조에서 읽으려고 하는 사상을 구조주의라고 한다.
구조주의는 인문학과 사회 과학 등 다양한 학문에 영향을 미친 철학의 사상 흐름의 하나로, 근본 요소들 사이의 상호 관계 위에 정신적, 언어적, 사회적, 문화적 '구조'가 성립하며, 그 구조에서 특정 개인이나 문화의 의미가 생산된다는 관점이다. 처음 시작은 언어학에서 출발하였지만, 적용 범위를 넓혀가면서 언어, 문화, 정치, 사회를 분석하는 가장 유명한 접근 방법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구조주의의 출발은 보통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언어학 연구라고 보며, 프랑스 학자들이 소쉬르의 구조적 접근법을 다른 학문에 적용하면서 유행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레비스트로스가 있다.
2. 페르디낭 드 소쉬르- 구조주의의 태동
스위스의 언어학자이다. 근대 언어학의 시조라 불린다. 제네바 명문 일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보였다. 10대 때 발표한 언어학 논문이 주목받아 언어학자로서 순조롭게 경력을 쌓았으나 후반생은 침묵했다. 사후, 제자들이 출판한 ‘일반언어학 강의/는 언어학은 물론이고 그 후의 구조주의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음성과 의미의 연결에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소쉬르는 이것을 ‘기호의 자의성’이라고 불렀다. 소쉬르는 ‘언어는 이름의 알림 표가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언어의 분리법의 차이로 다른 세계가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소쉬르는 언어를 ‘랑그’와 ‘파롤’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 고찰했다. 랑그란 어떤 언어의 규칙이나 문법이고 파롤은 개개의 발화 행위이다. 이 랑그와 파롤을 합친 언어활동 전체를 ‘랑가주’라고 한다. 소쉬르의 언어학은 랑그를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둔다.
프랑스 인은 나비도 나방도 ‘파피용’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즉, 프랑스인에게 나방 혹은 나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례에서 나방이라는 존재가 있기에 우리가 그 존재를 나방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물과 언어의 연결 관계에 필연성이 없다는 것을 ‘언어의 자의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예는 많다. 한국인은 무지개를 7가지 색으로 보지만 독일인은 5가지 색으로 본다. 또한 한국인은 사랑과 연애를 구분하여 표현하지만, 미국인은 사랑도 연애도 모두 다 Love이다.
즉, 먼저 개별 요소가 있고 거기에 이름 붙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세계를 언어로 구분하기에 개별 요소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언어 세계의 범위 내에서 생각한다. 언어는 사고를 전달하는 수단만 아니라 사고를 결정하는 원인이 된다. 현상에 대한 이러한 소쉬르의 접근법은 훗날 구조주의 사상의 주요 분석 수단이 된다.
3.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프랑스의 문화 인류학자이다. 구조주의의 중심적 인물이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법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 사회학 교수에 취임한 것을 계기로 아마존강 유역의 현지 조사에 나섰다. 1960년대 당시 사상계의 영웅이었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비판하고 구조주의 시대를 이뤘다. 레비스트로스는 토템(친족집단이 숭배하는 동식물이나 자연현상)을 기호 체계로 읽어냈다. 주요 저서로는 ‘슬픈 열대’가 있는데.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됐고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이 한 문장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인간은 자유롭기에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사르트르는 생각했다. 레비스트로스는 달랐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사고나 행동은 그 바탕에 있는 사회적, 문화적 구조에 지배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소쉬르의 언어학(언어의 자의성)을 인간 사회에 적용해 그러한 사상을 끌어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의 주체성은 구조에 의해 규정된다. 레비스트로스는 주체성을 강조한 사르트르의 사강을 서양의 인간 중심적인 사상이라고 비판하였다. 레비스트로스는 아마존의 미개 부족과 함께 행동하면서 인간의 사회구조 관계를 조사하였다. 예를 들어 두 미개사회에서 이뤄진 여성을 교환하는 풍습에는 근친혼 금지라는 공통적인 구조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행동은 구조에 지배받는다. 한쪽(미개사회)에서만 보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서양과 아시아 모두 여성이 신부로 가는 풍습이 있는데 그 진정한 의미를 의식하지 못한다. 두 미개사회의 사람들은 서로 여성을 교환하는 풍습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행동의 의미는 한쪽에서만 바라보면 알 수 없다. 시림은 항상 이항 대립을 축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레비스트로스는 말했다. 현상의 의미를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와 관계하는 사회나 문화의 구조에서 읽으려고 하는 사상을 구조주의라고 한다. 즉, 눈앞의 현상만 보면 본질을 알 수 없지만 넓은 시야로 보면 구조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4. 야생의 사고
사르트르는 주체적으로 사회에 참여해 역사를 진보시키고자 했다(앙가주망). 그러나 레비스트로스는 이 사상에 강하게 반대했다. 레비스트로스의 입장에서는 인류가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등, ‘모두 다 같이 인류의 역사를 이상적으로 전진시키자’라는 사르트르의 발상은 전쟁이라는 참상으로 결말지어지는 촌극으로밖에 보여지지 않았다. 사르트르는 서양적인 발상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못했다고 혹평을 내놓는 이유이다. 연가가 없는 아마존의 보로로 족이나 카리에라족과 함께 생활한 문화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에게 ‘인간의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향한다’는 사르트르의 주장은 인간 중심적인 서양 사상의 강요로 보였을 것이다.
서양인이 설계도에 따라 계획적으로 사물을 만드는 것과 달리 미개인은 그 자리에서 구한 재료를 조합해 사용하는 ‘브라 콜라주’(손재주)로 사물을 만든다고 레비스트로스는 말했다. 브라 콜라주는 유치한 발상이 아니다. 지구 환경이나 사회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지극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수단이다. 레비스트로스는 그들의 사고를 서양에 팽배한 ‘문명의 사고’와 대비해 ‘야생의 사고’라고 불렀다.
문명의 사고의 관점에서 보면 집을 짓는 데 있어 인류는 설계도를 바탕으로 계획적으로 만드는 엔지니어 같은 서양적 사고로 인해 초가집, 나무집, 벽돌집에서 빌딩까지 끊임없이 변화(진화)하지만, 야생의 사고의 관점으로 보자면 설계도 없이 그 자리에 있는 재료를 있는 그대로 사용해 만든 움막이 아주 오랜 옛날이나 지금의 움막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문명의 사고는 핵무기를 만들고 심각하게 환경을 파괴했다. 야생의 사고가 브라 콜라주의 발상을 통해 문명의 진보를 무의식적으로 거부한 것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 현상을 어떤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보지 않고 구조적으로 생각하면 야생의 사고와 문명의 사고는 서로 보완해 나가는 사고임을 알 수 있다고 레비스트로스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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